국민연금 5년 늦추면 36% 더 준다는데… 그 전에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지?

국민연금 수령을 5년 미룰지 고민하는 퇴직자의 모습과 36% 증가 숫자를 표현한 이미지


TV를 보다가 귀가 번쩍 뜨이는 숫자가 하나 나왔다. 국민연금을 5년 늦게 받으면 최대 36%가 늘어난다는 이야기였다.

어? 36%?
이 정도면 그냥 늦게 받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몇 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서 이상한 질문 하나가 튀어나왔다.

잠깐. 그런데 그 5년을 내가 못 넘기고 죽으면?

이 질문이 생기고 나니 ‘36% 증가’라는 숫자가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100세 시대라고들 하지만 내 수명이 몇 살까지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물며 내 몸이 언제까지 지금처럼 움직여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방송을 보다가 국민연금 연기연금을 다시 찾아봤다. 얼마나 더 받는지도 궁금했지만, 이제는 내가 그 돈을 실제로 받을 수 있느냐가 더 궁금했다.

국민연금을 1년 연기하면 7.2%, 최대 5년 연기하면 36% 증가한다고 설명하는 방송 화면

5년 늦추면 정말 36%가 늘어난다

이 부분은 방송의 과장이 아니었다. 국민연금공단 자료를 확인해보니 노령연금은 전부 또는 일부의 지급을 최대 5년까지 연기할 수 있다.

연기한 기간에는 매월 0.6%가 붙는다. 1년이면 7.2%, 5년을 꽉 채우면 36%다.

연기연금 증가율
1년 연기 → 7.2% 증가
2년 연기 → 14.4% 증가
3년 연기 → 21.6% 증가
4년 연기 → 28.8% 증가
5년 연기 → 36% 증가

숫자만 놓고 보면 솔깃하다. 평생 받는 연금이 36% 많아진다니 작은 차이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자꾸 한쪽만 보게 되는 것 같았다. 36%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연금을 받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5년을 연기한다면 그 5년 동안 받을 수 있었던 연금을 포기하는 셈이다.

자료 확인: 국민연금공단 ‘연기연금’ 안내 기준

그럼 5년 동안 못 받은 돈은 언제 따라잡을까?

여기서 조금만 단순하게 생각해봤다.

원래 받을 연금을 편의상 매달 100이라고 해보자. 5년을 미루면 60개월 동안 받을 수 있었던 6,000을 먼저 포기한다.

5년 뒤에는 연금이 136이 된다. 원래 받았을 100과 비교하면 한 달에 36씩 더 받는 셈이다.

단순 계산으로 보면

먼저 못 받은 6,000을 매달 36씩 추가로 받아 따라잡는 데 약 167개월, 약 13년 11개월이 걸린다.

그러니까 5년을 연기했다면 연기를 시작한 시점부터 따져 대략 18년 11개월 정도를 지나야 단순 누적수령액이 비슷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상 수령연령이 몇 살이냐에 따라 실제 나이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정상 수령을 65세에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단순 계산상 누적수령액이 역전되는 시점은 거의 84세 무렵이다.

물론 이 계산은 세금, 건강보험료, 물가변동, 개인별 연금액 등을 빼고 비교한 아주 단순한 계산이다. 그래도 내가 왜 “얼마나 오래 살아야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는지는 충분히 보여준다.

그 전에 사망하면 36% 오른 연금이 가족에게 가는 걸까?

여기가 가장 궁금했다.

처음에는 나도 막연히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받을 연금이 36% 늘어났다면 내가 죽은 뒤 가족이 받게 되는 연금에도 그 증가분이 어느 정도 따라가는 것 아닐까?

그런데 국민연금공단의 유족연금 설명을 확인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노령연금 지급을 연기해서 늘어난 가산금액은 유족연금액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생각이 꽤 달라졌다.

다만 여기서 표현 하나는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적금처럼 ‘내 원금을 가족에게 양도하는 상품’은 아니다.

사망하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유족에게 별도의 유족연금이 지급될 수 있다. 유족연금은 가입기간 등에 따라 기본연금액의 일정 비율을 기준으로 별도로 계산된다.

현재 국민연금공단 안내상 가입기간에 따른 유족연금 지급률은 기본연금액 기준으로 10년 미만 40%, 10년 이상 20년 미만 50%, 20년 이상 60%이며 여기에 해당되는 경우 부양가족연금액이 더해지는 구조다.

중요한 건 하나다. 내가 5년을 기다려 확보한 36%의 연기 가산분이 그대로 유족에게 승계되는 구조는 아니라는 것.

연기연금의 혜택은 생존 중 노령연금에 적용되고 유족연금은 별도 기준으로 산정된다는 내용을 설명하는 방송 화면 

100세 시대라지만 내 수명은 아무도 모른다

여기까지 보고 나니 ‘100세 시대니까 늦게 받는 게 좋다’는 말도 내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100세까지 살면 좋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면 더 좋다. 그렇다면 연기연금의 36% 증액은 분명 매력적이다. 오래 받을수록 매달 늘어난 연금의 힘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세 시대라는 말과 내가 100세까지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는 미래의 내 수명을 알 수 없다. 그런데 내가 확실하게 아는 기간은 있다. 바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시점부터 앞으로의 5년이다.

그 5년 동안 돈은 돈대로 필요하다. 먹고살아야 하고,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병원 갈 일이 생길 수도 있다. 남는 돈이 있다면 내가 판단해서 다시 굴릴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질문이 조금 바뀌었다.

국민연금을 어떻게 받아야 가장 많은 돈을 받을까?

이것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언제부터 받는 돈이 가장 쓸모 있을까?가 내게는 더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은 제때 받는 쪽에 한 표다

여기까지 알아보고 난 뒤 내 생각은 한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받을 수 있을 때 받는 쪽이다.

연금을 받으면 생활비로 쓸 수 있다. 생활비가 충분하다면 남는 돈을 다른 용도로 운용할 수도 있다. 어떻게 사용할지는 그때 내가 결정하면 된다.

물론 재투자를 한다고 무조건 돈이 불어나는 것은 아니다. 투자하면 손실이 날 수도 있다. 그래서 이것 역시 ‘연기연금보다 투자가 더 낫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내 입장에서는 5년 뒤 더 큰 금액을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부터 확보되는 현금흐름을 내가 직접 사용하는 선택이 조금 더 마음에 든다.

반대로 지금도 충분한 소득이 있고 당장 국민연금이 필요하지 않으며 장수 가능성을 높게 보는 사람이라면 판단이 다를 수 있다. 그 사람에게는 연기연금이 훨씬 매력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이건 어느 쪽이 무조건 정답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연금은 돈의 문제이면서 결국 시간의 문제였다

처음 방송을 볼 때는 36%라는 숫자만 보였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 36% 앞에는 보이지 않는 조건 하나가 붙어 있었다.

그때까지 내가 살아 있어야 한다.

당연한 말인데 연금 이야기를 할 때는 이상하게 이 당연한 조건을 자꾸 잊는다.

노후 준비를 하면서 오래 사는 위험도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돈을 지나치게 뒤로 미루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내가 이번에 정리한 기준

✔ 지금 생활비가 충분한가?
✔ 연금을 몇 년 미뤄도 현금흐름에 문제가 없는가?
✔ 오래 살 경우 늘어나는 연금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보는가?
✔ 당장 받는 연금을 생활비나 다른 자금으로 활용할 계획이 있는가?
✔ 사망했을 때 연기 가산분이 유족연금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는가?

나는 지금까지 알아본 내용으로는 그냥 제때 받아서 쓰는 쪽에 마음이 간다. 나중에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었을 때 내 건강, 생활비, 다른 소득을 다시 봐야 할 테니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36%를 더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인생의 5년 역시 공짜는 아니다.

연금을 고민하다가 결국 돈보다 시간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퇴직하고 나니 이런 생각을 예전보다 자주 하게 된다.

꼭 확인할 점

연기연금 선택은 개인의 출생연도, 정상 수급연령, 소득, 건강 상태, 다른 노후소득, 세금·건강보험료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실제 신청 전에는 국민연금공단에서 본인의 예상연금액과 연기 시 예상금액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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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확인
국민연금공단 연기연금 및 유족연금 안내 자료를 기준으로 작성했다.
제도와 개인별 수령액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실제 연금 수령 시점에는 국민연금공단에서 본인의 가입내역과 예상연금액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 좋다.

※ 이 글에서 ‘제때 받는 쪽이 낫다’는 내용은 개인적인 판단이며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연금 수령 전략을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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